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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기복분자마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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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성기

    강름김씨 12 대조 김참의공 김성환 이 1711 년 임촌 옥기촌으로부터 이주하여 성기마을을 형성하였습니다 . 당시 심씨가 100 여년 동안 떠났는데 의성 김씨 김한영 이 들어와 심씨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. 처음에는 임촌의 옥기촌을 본떠 [ 옥기촌 ] 이라 불렀으나 심씨가 들어오면서 [ 심산동 ] 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심씨가 떠나 고 강릉김씨 김성환 이 들어오면서 그의 호를 따 [ 成基 ] 라 부르다가 성기 [ 性基 ] 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2000 년 12 월 전북대학교 김환기 교수가 쓴 마을유래비를 보면 성기는 고기 하 하였으며 , 마을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고 그 앞의 노송은 수백의 연륜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.

    마을은 우물을 가운데 두고 큰 뜸을 성기라하고 맞은 뜸을 옥동이라 하며 당산너머 새터를 심상동이라 합니다 심상동 앞 방죽을 심상제라 하여 조선중기에 뚝을 막은 것으로 전해지며 방죽 건너 인동이 있어 장이 섰다고 합니다 마을로 넘어오는 장등을 정자산이라 하였으니 마루턱에 정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거기에 솟대가 섰으니 풍년을 비는 민속이었습니다 .

    마을 뒷켠을 비단골 또는 금동이라 하은 장등이 길게 뻗어 비단을 펼친 것 같아서 그렇게 불리우며 , 백호등 너머 금촌과 옥기촌은 강릉김씨가 잠시 머물다 간 터라고 합니다 . 청룡등 너머 학배미는 학이 많이 앉아 학배 미라 했으며 앞들을 타작마당이라 하고 키질을 하여 왕겨를 쌓은 것이 대메뒷봉이라 하는데 이는 마을을 키 형국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. 키 형국이어서 좌우포장이 순탄할 수밖에 없고 외산으로 비학산이 뒤를 받치고 한봉과 망치산이 앞을 지켜 터를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.

    거주 성씨로는 옛날에 청송심씨 가 살았고 , 강릉김씨는 참의공 전이 외조 오진사 세영을 따라 선조 때 경기도 김포에서 무장 교촌으로 입향하여 금촌 옥기촌을 거쳐 들어오고 , 의성김씨는 장산공 세태 참의공의 손서가 되어 전남 장성에서 옮겨 왔으며 진주정씨 , 진주강씨 , 김해김씨 , 무송유씨 , 행주기씨 , 전주이씨가 차례로 들어와 여덟 성이 살고 있습니다 . 마을 이름을 돌이켜 보면 성기와 심상은 서로 표리를 이루니 성 [ 性 ] 의 터가 아음이고 마음의 실상이 성 ( 性 ) 이며 심상은 본디 어질기 때문에 인동이라하고 옥동은 은자의 주거이 니 옛날 그 곳에 은거한 천사가 , 성현은 인리를 가려 살지 않으면 지혜롭지 못하다 했으니 인인지사가 찾아들 지 않겠는가 .

    오늘에 그 유풍을 이어 노은은 노은대로 젊은이는 애향회로 미풍양속을 떨치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. 다행히 이번에 군비를 얻어 당산을 정화하고 시정을 개축하면서 성기의 유래를 비에 담아 후세에 전하려 하니 고향 사랑하는 애향회의 높은 뜻을 기리어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이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.